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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노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1897~1990) 문명화 과정(civilization process)

by 펭귄가든 2023. 5. 10.

노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1897~1990)의 문명화 과정(civilization process)

노베르트 엘레아스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그가 문명화 과정이라고 부른 장기적인 역사발전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임의로 자신의 연구 출발점을 중세 유럽으로 선택하였으며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서의 변화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수집한 대부분의 정보는 13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쓰인 예법(manners)에 대한 저술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동과 관련된 예법이 장기적으로 변화한 것을 발견하였다. 과거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현재는 매우 당혹스러운 것들이 있다. 그 결과 과거에는 매우 대중적으로 용인되었던 행동들이 현재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다수의 사람이 어떤 특정한 세속적 행동들을 공격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되면서 우리는 공공적인 시선이 없는 곳에서나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다. 식사 예절을 예로 들어보자. 13세기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동물의 뼈를 갉아 먹고, 먹다 남은 뼈들을 차려놓은 접시에 던지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행동에 핀잔을 주거나, 그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가 되는 경우 주의를 환기할 경우에만 뼈를 던지는 행동을 부끄러워했다. 또한 다수의 사람이 식사 중 코를 후비는 행동에 익숙했다. 그들은 식사 중 코를 후비는 행동에 대해서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들었지만 그러한 지적에 별로 당혹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행동이 교양 없는 행동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난 후에 그와 관련한 예절이 책 속에서 언급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학습하였다. 결국 코를 후비는 행위는(어린아이는 제외) 공개석상에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가 되었다. 이후 그보다 덜 터무니 없는 행위들에 관심이 돌려졌다. 예를 들어 16세기의 문헌에는 식탁에서 손가락을 빨아대는 행동이나 손가락으로 소스를 휘젓는 행동 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들은 이제 식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유사한 경향은 방귀를 뀌는 것과 같은 다양한 자연적 기능에 대해서도 발견된다. 14세기의 아동 교재에는 그러한 행동에 대해 다양한 조언이 적혀 있다. 이러한 행동에 대해 조언이 필요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여러 사람 앞에서 종종 요란하게 방귀를 뀌는 일이 매우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훨씬 문명화된 21세기에는 그러한 종류의 문헌이나 경고가 필요하지 않다. 오늘날에는 그러한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엘리아스가 기술하고 있듯이 당혹감의 경계는 방귀를 뀌는 것까지 포함하였다.
코를 푸는 행동도 유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예절에 대한 15세기 문헌에는 고기를 집어 먹은 손으로 코를 푸는 행동에 대해 경고한다. 16세기의 문헌에는 코를 푼 이후 자신의 손수건을 펼쳐 코 푼 것을 드러내는 것에 주의를 주고 있다. 18세기경에도 여전히 코를 푸는 행동에 주의를 주고는 있지만 그러한 종류의 행동은 대부분 수치스러운 행동의 경계 뒤편으로 사라졌다. 성행위도 유사한 운명을 맞이하였다. 성행위는 같은 방에서 밤을 지새우고, 벌거벗고 잠을 자는데 익숙한 중세 시대의 남녀에게 일반적이었다중세 시대에는 신혼 첫날밤에 결혼행렬이 신랑, 신부의 침실까지 뒤따라갔다. 결혼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신랑과 신부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침대 위에 누워야만 했다. 이 모든 것은 오늘날에 수치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며, 신랑과 신부는 그들의 첫날밤을 은밀하게 보낸다. 엘리아스는 세속적 행동의 역사적 변화에 관해 기술하였다. 그는 우선 국가라는 거시적 수준에서 출발하였다. 주요한 발전은 왕이라는 강력한 국가수장의 출현이었다. 왕과 함께 세금과 전쟁을 통제하는 중앙집권적 정부가 출현하였다. 왕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대등하게 권력이 분할된 궁정이 생겨났다. 궁정은 엘리아스 논쟁의 핵심이다. 궁정이 출현하기 전에는 전사들이 특별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엘리아스가 종속 사슬(dependency chains)이라고 불렀던 것을 지녔기 때문에 폭력에 관여하는 것이 가능했다. 종속 사슬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고 다시 후자가 또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는 것을 포함하는 관계의 사슬을 말한다. 전사들의 폭력적 행동은 전사들 사이의 종속 사슬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었다. 어떤 의미에서 전사들은 심각할 정도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거나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으므로 자유롭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반면에 궁정의 귀족들은 폭력을 예방하는 장기적인 종속 사슬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종속되었으며(전사들은 그러한 요구와 욕망을 별로 원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와 같은 사업을 위해 귀족에게 종속되었다. 이 경우 귀족들이 관여한 폭력은 다수의 사람, 나아가서 전체로서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장기적 종속 사슬로 귀족들은 다른 사람들의 요구와 기대에 민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귀족들은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절제력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종속 사슬에 연계된 사람들을 방해하는 사람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귀족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는 또 다른 이유는 왕이었다. 왕은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과 무기 그 자체를 통제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사회의 정상(귀족과 이들의 종속 사슬)에서의 변화가 사람들이 코를 후비고 방귀를 뀌는 일 등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이다. 그 대답은 귀족들이 직면한 상황과 귀족들에 의해서 개입된 행동이 사회 전반에 걸쳐 점차 많은 사람에게도 현실화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종속 사슬은 점차 더욱 많은 사람에게 더 길게 연장되었다. 그 결과 다수의 사람은 귀족처럼 그들 주위의 사람들과 요구에 민감해졌다. 매우 길어진 종속 사슬은 소수의 사람뿐 아니라 종속 사슬에서 멀리 떨어진 다수의 사람에게도 추한 행동에 대한 개입이 알려지거나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누군가가 파티에서 코를 후비거나 방귀를 뀐다면 언젠가는 다수의 사람이 그것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실에 대한 소식과 그에 대해 예민함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방귀를 뀌거나 코를 후비는 일에 대해 점차 신중하게 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본적인 본능에 대해 용의주도하고 더 잘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것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사람들이 덜 폭력적이고 면전에서 방귀를 뀌거나 코를 후비지 않으므로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삶은 전보다 위협적, 천박, 돌발적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삶은 단조롭고 재미 없어졌다. 다양한 행동을 옮길 수 없기에 사람들은 점차 억눌리고 지루해지고 여유를 상실하고 있다. 엘리아스는 장구한 역사 탐구에 이어서 자기 생각을 보편적으로 스포츠, 특히 여우 사냥과 같은 좀 더 특화된 영역에 적용하였다. 그의 논증에 따르면 우리는 스포츠로 인해 폭력이 일반적으로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초기 여우 사냥은 사람이 여우를 죽여서 잡아먹는 것으로 매우 사악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우 사냥은 점차 문명화되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아닌 개가 여우를 죽인다. 더 나아가 여우를 잡아먹는 일이 정상적이지 않게 되었다. 이처럼 사냥이 스포츠화가 되면서 사람들에게 여우 사냥은 지루해졌다. 여우 사냥이나 다른 많은 스포츠는 문명화되면서 점차 재미없고 흥미롭지 않게 되었다.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유럽, 특히 영국 축구에서 빈번하게 분출된다. 폭력은 선술집과 거리에서 그리고 사소한 충돌과 국가 간의 전쟁에서 규칙적으로 목격된다. 만약 우리가 스포츠에 더 많은 폭력을 허용하고 스포츠가 덜 문명화 되었다면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폭력을 덜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엘리아스는 문명화가 필연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덜 문명화된 사회는 더 문명화된 사회보다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점진적인 문명화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다양한 것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아스는 미시-거시 구분을 극복하려 하였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개인과 사회를 구별하는 사회학자들의 경향을 극복하려 하였다. 자신의 통합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결합태 개념을 제안하였다. 결합태(figurations)란 솔직하고 상호의존적인 개인의 뒤섞임을 포함하는 사회적 과정이다. 권력은 사회의 결합태에 핵심적이며, 사회의 결합태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결합태는 대부분 인지되지 않거나 의도되지 않은 방식으로 출현하여 발전된다. 엘리아스는 개인과 사회 간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을 거부한다. 다시 말해서 개인과 사회 양자(그리고 양자 간의 모든 사회적 현상)는 사람 즉, 인간관계를 포함한다. 상호의존성 사슬이라는 개념은 엘리아스가 의식적으로 사용하고 동시에 엘리아스 사회학의 핵심을 구성하는 결합태라는 개념만큼 훌륭한 이미지이다. 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되며 왜 그러한 연계가 발생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결합태에 대한 엘리아스의 생각은 개인들이 타자에 대해 열려 있으며, 상호연관을 가진다는 표상에 기초한다. 그는 대부분의 사회학자가 다른 모든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유일한 개인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작업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이미지는 결합태 이론에 적합하지 않다. 솔직하고 상호의존적인 행위자에 대한 표상이 형상적 사회학(figurational sociology)에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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