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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구조기능주의

by 펭귄가든 2023. 5. 22.

구조기능주의

 

 구조기능주의는 그 이름 그대로 사회의 구조와 그 기능적 중요성(다른 구조들에 미치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결과들)에 초점을 맞춘다. 구조기능주의에서 구조라는 용어와 기능이라는 용어는 으레 연결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함께 사용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구조가 다른 구조들에 미치는 기능들(관찰할 수 있는 결과들로서 특정 체계의 적응이나 조절을 도와주는 것)에 대한 고려 없이도 충분히 구조들, 유형화된 사회적 상호작용, 지속적인 사회관계들을 연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구조적 형태를 띠지 않은 다양한 사회과정들(가령 군중 행동)의 기능에 대해서도 연구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두 요소-구조와 기능-에 대한 관심이 구조기능주의의 핵심적 특징이다. 구조기능주의는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긴 하지만 전체사회적 기능주의가 사회학적 구조기능주의자들 사이에서 가장 지배적인 접근 방식이다. 전체사회적 기능주의의 우선적 관심은 사회의 거시적인 구조와 제도들. 그것들 간의 상호관계와 그것들이 행위자들을 구속하는 효과들에 있다. 어떤 구조기능주의자(특히 사회총체적 기능주의에 속하는 학자)는 사회의 거시 구조들-말하자면 교육제도와 경제제도-간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인다. 여기서 연구의 초점은 각 제도가 다른 제도에 제공하는 기능에 맞추어진다. 예를 들어서 교육제도는 경제제도 안에서 직업적 지위를 차지하는데 필요한 훈련을 담당한다. 역으로 경제제도는 교육과정을 마친 사람들에게 걸맞은 지위를 제공한다. 이것은 교육제도와 학생들에게 교육과정을 완수하기 위한 목표를 제공한다. 이런 식의 분석은 사회구조들이 서로 딱 들어맞으면서 긍정적인 관계라는 이미지를 준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는 교육제도가 대다수의 급진적 학생들을 배출하였으며 이들은 그 당시 제공되던 직업 세계로 적절하게 편입될 수 없었다. 이런 식의 긴장이 고조들 간에 종종 존재하지만 구조기능주의자들은 좀 더 긍정적이고 기능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다음 절에서는 구조기능주의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업 중의 하나이자 자극적이고 상당히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론을 다루고자 한다.
 기능주의 계층이론은 1945년 킹슬리 데이비스(Kingsley Davis)와 윌버트 무어(Wilbert Moore)에 의해 주창되었으며, 사회계층이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들은 그 어떤 사회에서든 계층화되지 않은 혹은 계급 없는 사회라는 것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계층은 기능적 필요(functional necessity)다. 모든 사회는 그러한 체계가 필요하며 바로 이 필요성 때문에 계층체계가 존재하게 된다. 그들은 또한 계층체계를 사회적 차원의 구조로 본다. 따라서 계층이란 계층체계 안의 개개인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위체계(가령 경영자라든가 노동자 같은 직업들)를 의미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들은 개인이 어떻게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구조 안에서 사회적 지위들이 각기 다른 사회적 위신(prestige)을 수반하고 있음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그들은 사회계층이 수행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그 구조에도 주목한다.
 데이비스와 무어 이론의 주된 논제는 어떻게 사회가 사람들에게 계층체계 내에서 적절한 지위를 차지하도록 동기를 유발하며 또한 어떻게 그 지위로 배치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사회는 어떻게 개인에게 자신에게 적절한 특정 지위를 차지하려는 욕망을 주입할 수 있는가? 둘째, 일단 개인이 적절한 지위를 얻게 되면 사회는 어떻게 개인들에게 그 지위가 요구하는 바를 수행하겠다는 욕망을 가지도록 할 수 있는가? 적절한 사회적 배치는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어떤 지위는 다른 지위보다 더 즐겁다. 사람들이 즐거운 지위를 갖도록 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별로 즐겁지 않은 지위를 갖게 하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또한 어떤 지위는 다른 지위보다 사회의 유지 존속을 위해 더 중요하다. 따라서 모든 지위가 다 채워져야만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가장 중요한 지위들이 채워져야만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며 필수적이다. 끝으로 다양한 사회적 지위들은 서로 다른 능력과 재능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에게 딱 맞는 지위를 맡게끔 그 방법을 찾는 것이다. 즉 개인의 기술 및 재능과 지위의 요구조건들이 만족스럽게 일치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비스와 무어는 한 사회의 계층체계 안에서 기능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위들에 관심을 가졌다. 계층체계에서 서열이 높은 지위는 그것을 수행하는 것이 덜 즐겁지만 사회 존속을 위해서는 더 중요하며, 또한 가장 큰 능력과 재능이 요구되는 일이라고 가정한다. 사회는 이런 지위들을 맡게 된 개인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이들 지위에 충분한 보상을 부여해 주어야만 한다. 데이비스와 무어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역의 경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즉, 계층체계 안에서 서열상 낮은 지위는 더 즐겁고(이는 이상한 견해이다. 가령, 노동자의 지위가 경영자의 지위보다 즐거운가?) 덜 중요하며 더 적은 능력과 재능이 요구된다고 가정될 것이다. 또한 사회는 개인이 이런 낮은 지위를 맡아서 얼마나 열심히 그 직무를 수행하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큰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계층은 지위의 위계 서열을 포함한 구조이며, 사회의 기능 수행과 존속을 위해 꼭 필요한 기술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서열상 높은 지위를 맡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데이비스와 무어가 높은 서열의 지위가 적절하게 충원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 사회가 의도적으로 이러한 계층체계를 발전시킨다고는 기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계층이 어떠한 사전 계획과도 무관하게 갖추어지게 된 장치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계층체계는 모든 사회가 존속하기 위해서 발전시킨 그리고 또 발전시켜야만 하는 장치이다. 그들 관점에서 보자면 사람들이 높은 서열의 지위를 맡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사회는 이들 개인에게 상당한 위신 높은 봉급, 충분한 여가를 포함한 여러 가지의 보상을 제공해 주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사회에서 충분한 인원의 의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위에 언급한 보상들과 더불어 많은 다른 보상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가 그런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그렇게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의사 교육 과정을 거치겠냐고 데이비스와 무어는 주장한다. 이들 주장을 따르자면 정상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만일 보상이 없다면 그런 지위들은 충원되지 못하고 빈자리로 남아 있게 될 것이고 사회는 삐걱거리거나 와해할 것이다.
 구조기능주의 계층이론은 1945년에 출판된 이후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가장 근본적인 비판은 기능주의 계층이론의 권력, 명예, 돈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상층 사람들의 특권적 지위를 단순히 영속화한다는 것이다. 특권층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보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으며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도 그런 보상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기능주의 계층이론의 주장이다기능주의 이론은 단지 계층화된 사회구조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존속해 왔기 때문에 미래에도 계속 존재해야 한다고 가정한다는 점에서도 또한 비판 받을 만 하다. 미래의 사회들은 계층 없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될 가능성도 있다비 계층화된 다른 형태의 구조가 만들어져서 계층체계에 수반되는 유해한 결과들(가령 불평등의 심화) 없이도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사회의 각 지위가 그 기능 면에서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다르다는 발상도 지지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다. 쓰레기 청소부가 광고업자보다 사회의 존속을 위해 실제로 덜 중요한가? 쓰레기 청소부의 낮은 수입과 위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실제로 사회의 존속에 더 중요할 수 있다. 설사 어떤 지위가 사회를 위해 보다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지라도 더 큰 보상이 보다 중요한 지위에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간호사는 영화배우보다 사회에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간호사는 영화배우보다 훨씬 낮은 권력과 명예, 적은 임금을 받는다. 높은 지위를 담당할 능력이 있는 인재가 정말로 부족한가? 사실상 설사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높은 특권적 지위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훈련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의료전문직의 경우에 수련의의 숫자를 제한하려는 노력이 지속해서 있었다. 일반적으로 능력, 있는 많은 사람이 사회가 그들의 공헌을 필요로 함에도 높은 지위의 일을 수행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 줄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 지위의 숫자를 제한하면서 자신의 권력과 수입을 높게 유지하는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 끝으로 사람들이 높은 지위를 원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권력, 명예, 수입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사람들은 일을 잘하고 있다는 만족감이라든가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할 기회를 가진다는 것에 의해서도 마찬가지로 동기화될 수 있다. 구조기능주의자들은 사회 계층체계의 구조와 작동에 관한 이론적 초상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보수적이고 논쟁의 여지가 많은 초상이다. 사람들이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동기화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조직을 다른 방식으로 조직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계층에 대해서 그리고 좀 더 포괄적으로 사회조직 일반에 대해서도 다른 이론적 초상을 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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